일본 SF만화중에 좋아하는 걸 꼽자면 이그젝션이랑 파괴마 사다미츠, 최근엔 총몽(라스트 오더), 철완 버디 정도. 사실상의 장르로 따지자면 사다미츠와 총몽 라스트 오더는 격투물이고, 철완 버디는 형사물이고, 이그젝션은 거대로봇물이겠지만.
그러나 작품의 중심으로 쓰인 소재가, 아직까지는 사실상 상상에 지나지 않는 과학-평행우주 이론이라거나, 중력제어 기술이라거나, 항성간 이동, 테라포밍 등등- 을, '실제로 범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가정했을때' 의 세계를 만화로써 꽤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 만화들을 사이언스 픽션(SF) 의 범주로 다룰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이그젝션의 경우는 '사회상' 까지 그 상상력이 미쳤기 때문에, 일종의 '소사이어티 픽션' 같은 관점에서,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근미래 SF라고도 평가한다.(물론 패트레이버가 그 마스터피스인것은 부정하진 않겠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래서 나는 '분명히 SF의 탈을 쓰고 있음에도' 전혀 '그럴듯한 정도만큼의 리얼리티' 조차도 표현하지 못한 경우를 매우 싫어한다. 예를들어 'SF 밀리터리물' 메탈기어솔리드 시리즈-중에서도 최신작인 4-가 있겠는데. 가까운 미래, 전쟁이 전세계적 규모의 경제산업화한 세계를 표현하고, 그리고 그 중심소재로 나노머신 기술을 활용하였다는 상상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으나. 그걸 자연스러운 리얼리티까지 구현하지 못한 결과란 뭐랄까. 실제로, MGS4의 전쟁은 현대의 중동-미군 들의 전투와 별반 다를바 없고. 막힌다 싶으면 나노머신을 마법마냥 부려서 얼버무리는 식의 시나리오에다가, 그걸 또 그럴듯하게 표현하자고 선택한게 밑도끝도 없이 깊은 설정놀음에 쓸데없이 지나친 설명까지 주구장창 하고 있는 꼴이라니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사실 MGS의 SF적 중심은 메탈기어. 즉 핵레일건을 탑재한 보행전차라는 전쟁의 양상을 뒤집어놓을수 있는 신병기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 병기의 개념이란게 MSX시절-그리고 냉전시대-에는 리얼리티가 있었겠지만 지금 현대에 들어와선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인터라. 그래서 병기의 비중을 줄이고 사람에 촛점을 맞춘다는 불가피한 선택이. 되려 쓸데없이 마법질만 하는 결과가 되버렸으니 아이러니라고 할수 밖에)
그래서 나는 사실상의 '판타지 만화' 로 봐줄수밖에 없는. 마모루 나가노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를 매우 싫어하는 편이다. 아니 엄연히 말하자면 이걸 뭐 엄청 거창한 은하계 스케일의 최고 최강 SF로 맹신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는 쪽이 정확하겠다. 역사의 규모에 집착하는 일본판타지 특유의 '사가' 스타일이야 그려러니 해도, 리얼리티가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리얼리티를 부여하려 하다 보니, 결국 마법질과 설정질을 빼면 이야기가 안되는 컨텐츠가 되버렸는데 이게 과연 완성도가 높다 할수 있을까. MGS와 엎어치나 메치나 똑같은 경우다.
물론 이건 이견이 있을테고, 또한 물론 파고 들어가면 그저 단순히 내 한사람의 개인적인 취향 문제에 가까울수 있겠지만. 세계와 시간의 깊이로 따지자면 앞서 말한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도 사실 은하계 스케일이고 수천만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쪽이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적어도 이쪽은 설정이나 마법을 굳이 알고 보지 않아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해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친절하며, 또 전개상 불가피하게 필요한 마법질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설정은 이야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대중친화적 컨텐츠' 라고 할수 있겠는데. 반대로 보면 MGS나 FSS는 작가주의적이고. 지나쳐서 마스터베이션까지 흐른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은 써로게이트 리뷰를 쓸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새버리고 말았다. 별로 재미가 없어서 쓸 거리도 없었지만서도. 헐리우드산 SF를 나는 특히 좋아하는 편인데. 이를테면 아이로봇이나 마이너리티리포트 같은. 왜냐하면 그쪽은 기본적인 이야기의 완성도가 있고. 나아가 SF적 상상력의 특수한 소재에 의존하지만은 않고, 그 소재로 인한 '현상' 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게임업계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로써의 이야기를 약간 덧붙여 보자면. 인터넷 강국이란걸 제외하면 딱히 외국보다 앞서 나가는 월등한-즉 SF적 상상력이 구체화된-기술산업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고. 또한 오래전부터 만화건 소설이건 SF만 했다하면 딱 말아먹기 좋았기에 베이스가 될만한 문화적 상상력이 부재한거야 그렇다 쳐도. 우리 세대의 아티스트가 성장기부터 접해온 SF작품이란게 그래서 대부분 그 일본식의 멍청한 작가주의적 작품들이라서 그렇기 때문인지. SF 장르의 이야기를 꺼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라는게 고작해야 건담 정도에 그치고 마는것은 나는 참 한숨이 나오더라. 뭐 그렇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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