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정성을 가진 그림' 이란 주제를 그림의 '스타일' 에 비추어 최대한 알기 쉽게 이야기해보도록 한다. 그림에 있어 스타일이란 매우 중요하다. 그림의 스타일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개념인 '그림체' 로써 이야기한다면 아마도,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체, 멋지고 이쁜 그림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림 좀 보고 그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림이 진정성을 가지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스타일' 이 아티스트의 '삶' 그 자체와 일치 되는 방향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이미 그 아티스트부터가 다른 사람과 다른 독특한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고. 멋지고 이쁜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이미 그 아티스트부터가 누구보다 멋지고 이쁜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며, 반대로 말하자면, 정말 멋지고 이쁘고 특별한 삶을 사는 아티스트일수록 '진정으로' 멋지고 이쁘고 특별한 스타일을 낼수 있다는 이야기다.
동의하기 어렵고, 또 이해하기 난해한 이야기일수도 있으니 여기에서 한가지 쉬운 비유를 꺼내보도록 하자. 해골프린팅 티셔츠를 선두로 한때 유행했던 펑크룩을 생각해보자. 간단하게 말해서 '펑크가수 같은' 필의 그런 패션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정말 펑크가수처럼 잘 차려입은 트렌드셰터들이 비추어지는 미디어를 보면서 뭔가 아귀가 맞지 않다 약간이나마 느꼈던 사람들이 있을텐데. 이 위화감의 정체야말로 바로. '펑크가수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사실은 진짜 펑크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나타날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패션을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 으로 본다면. 정체성과 동떨어진 표현은 반대로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로 이런 경우를 '진정성이 없는 거짓 스타일' 의 대표적인 일례로써 바라볼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멋진 스타일로 그림을 그린다 한들 그 자체가 진짜가 아니라서야 '그저 펑크가수를 흉내내는 룩' 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아무리 '패션은 삶의 방식' 이라고 해도, 사실 정말 자신의 삶의 방식과 일치된 패션을 표현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뿐더러. 소수의 특색있는 직업-진짜 펑크 가수등-을 제외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은 그저 '트렌드에 맞게 의복을 갖춘다' 를 패션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런 트렌드를 '산업으로써 주도하기 위한 첨병' 인 트렌드셰터에게 패션의 진정성을 요구하는 자체가 실은 어불성실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에서. 상업적 가치를 최우선하는 예술이라면. 사실 스타일의 진정성이란 전혀 필요치 않을수 있다. 문제는. 이런 현대의 '패션 트렌드' 라는것이 본질적인 패션의 의미(정체성의 표현)에서 크게 동떨어진 그저 거대 산업 시스템에 불과하듯이, 이런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트렌드셰터들은 패션아티스트(또는 디자이너) 라고 말할수 없는 그저 미디어 전시용 마네킹 역할에 불과하듯이, 그저 '팔리는 스타일' 을 따른다는 것은 것은 말이 좋아 상업예술이지 사실은 예술이라고 말할수도 없는 그저 상업(장사질) 에 불과할 뿐이며, 그런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는 애초 아티스트라고 부를수조차도 없는 그저 장사꾼(또는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 역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설령 정말 거짓으로 점철된 장사-상업예술이라고 해도, 스타일의 진정성이란 여전히, 그리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인은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단순히 가시적 표현- '그림체' 같은 것만이 스타일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패션밖에 없지는 않은것처럼. 오히려, 그림체 같은 외견은 사실 결국 그저 형식에 불과한 것이라. 오히려 그때 그때마다 새로운 형식을 인스턴트로 시도하는 쪽이 오히려 낫다. 형식이 어떻건 간에. 즉 무슨 옷을 걸치건 간에. 그 옷을 왜 선택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선택했는지. 필연적인 '이유' 만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외형이 아닌 내실, 외견이 아닌 내용. 바꾸어 말하자면 '철학' 으로써의 스타일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그리고 멋지고 이쁜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자신만의 독특하고 멋지고 이쁜 그림을 그려내기 위한 '일관된 철학' 이 필요하고. 철학이란 그저 남 그림을 연구하거나 잡지를 뒤적이며 엉덩이만 붙이고 있어서야 만들어지지 않는, '인생' 그 자체로부터 오는 것임이 명백하다. '독특하고, 멋지고, 이쁜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라는 욕구를 버려야 한다. 어린 나이에 스타일로 성공한 이들을 시기할 필요도 전혀 없다. 진정한 스타일은 바로 삶의 방식과 일치된 형태다. 삶 자체를 독특하고 멋지고 아름답게 가꾸어나간다면 언젠가는 그림이 그렇게 그려질 것이다.
덧붙임: 1. 외견이야 어쨌건 상관없기 때문에라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내용' 이 전혀 변하지 않는 스타일의 아티스트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린 나이에 스타일로 크게 성공한 아티스트일수록, 그 내용 자체가 고작 중고등학생정도의 저급한 레벨에 머물러 있을 수록 더욱이나, 이런 아티스트는 철학이 심각하게 결여될수밖에 없기에, 뭔가를 배운다거나 또는 롤모델로 삼는다면 오히려 해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2.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것이 일반적인 예술계의 풍토라고 하지만. (사실은 예술가의 가치관이 평범한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 그래서 '실제로 그려내는 그림과는 정 반대로 삶 자체는 실제론 시궁창일수밖에 없는' 약점을 예술가라면 기본적으로 가질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해결책이란 이를테면 '동아리', '화실', 크게 잡으면 '학파' 같은. 예술가 자신들을 위한 사회를 '건설'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러나 이는 삶의 철학이 풍부해지긴 커녕 오히려 아카데미즘으로 연결되어 협소해지고 독선적이 되기 십상인 단점이 매우 치명적이기에. 개인적으로는 '일반인의 사회에 투신하여 속하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다만 예술가로써의 정체성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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