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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좀 늘어났던 덕택에 약 일주일정도를 내리 쉬었다.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잠만 잤다. 경제사정은 아직 호전되지 않았다. 예상은 저번주였는데 생각외로 늦어진다. 한 며칠 더 기다려보면 무슨 결과든 나올까. 먼지가 쌓인채 방치되던 지갑을 뒤져보니 잊고 있던 천원짜리 몇장이 발견되어서 그걸로 담배 두갑을 샀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놈의 지갑. 아니, 프랭클린 플래너 CEO사이즈. 다이어리라 하기엔 엄청나게 비싼 돈을 들여서 샀던걸로 기억하는데... 지갑으로 들고다니다 회의때 낙서하는 정도로밖에 쓰지 못한 용도란 아마도, 허세로 점철된 내 지난 사회생활을 여실히 상징할거다. 결국 사실은 지갑이라고 부를수도 없는 '제년 지난 다이어리' 에 불과할 뿐이다 돈이 없어지고 나서야 깨달음은 매우 아이러니컬하군. 돈 생기면 이것부터 빨리 갈아치워버려야겠다. 올해 생일즈음해서 친구들로부터 새 지갑을 선물로 받는쪽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그래 내 친구들. 여자들. 친구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다시 친구들을 만날수 있을까 별로 자신이 서지 않는다.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취하지 못하고 살다 보니, 다시 전화를 하고 만나서 얼굴을 보면 무슨 표정으로 무슨 이야길 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갑자기 생각난 며칠전에는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해내는부터가 힘들어졌으니 말 다했지. 핸드폰에 이름과 전화번호가 기억되어 있으니 망정이니... 사실. 이제는 한두번 만났던 몇몇은 이름을 봐도 도저히 누군지 생각나지 않아서 전화번호를 정리하는 지경까지 이르른 내 기억력이 문제가 아니다. 좀 더 속 깊은 곳의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그녀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별로 전혀 궁금하지도 또 걱정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순전히, 이는 내가 거의 반년을 넘게 한동안을 정신적으로도 또 물질적으로도 전혀 여유를 낼수 없었던 상태였기 때문일터다. 내 앞가림부터가 안되는데 어떻게 남을 일일히 신경쓸수 있을까. 그래 남이다. 아무리 패밀리라고 말로 강조해도 사실은 남이었다. 적어도 일이주일에 한번씩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전화하거나 또는 만나곤 했던 사슬도 애초에 이유가 없었으니 끊길수밖에 없었다. 이유랄까... 나는 왜 그녀들을 지금껏 만나오고 있었던 걸까. 대체 무엇을 기대했길래 그저 남이었던 그녀들에게 그렇게 베풀었던 것일까. 명백히 그때와는 다른, 이제는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를 원초적인 레벨에서부터 걱정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 아마 그 해답이 있지 않나 싶다.
그때 그곳엔 내가 없었다. 아니, 남자도 여자도 없었다. 서로가 없었다. 그냥 길을 걷다 어께를 잠시 스쳐지나가는 관계에 불과했다. 나는 여자들의 옆자리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생각했지만 애초에 내가 남자로써의 스탠스를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과한, 그래서 애초에 나는 그녀들을 여자로 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과한, 남자로 취급되지 않는 사람을 옆에 앉혀놓은 것에 불과한 착각이었다. 게이와 비슷했겠지만. 마주한 상대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이 정체성은 확실히 구별된다. 사실상 나는 정신적인 고자와 마찬가지였던 거다.
몇시간내내 이어지는 작업유도멘트의 술자리를 떼어놓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 혼자 택시를 타고 훌쩍 집에 가버렸을 때의. 아침이 올때까지 술을 퍼마시고 대리운전 뒷좌석에 무릎베게를 하고 내 집까지 와놓고는 그냥 잠이나 자라 빈방에 던져놨을때의, 소개팅 이후 애프터로 계속 강도를 더해가는 간보기에 지치다 못해 부담감을 느끼던 때의 그녀들의 당혹감을 이제 이해할것 같다.
착하게 살겠다. 소울메이트를 많이 만들겠다. 썩 괜찮은 삶의 목적이다. 하지만 그 전에 나를 갖추는게 먼저일것 같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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