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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상품에서의 차별화된 오리지널 세계관에 관하여.

위 글에서 이야기한 세계관 차별화에 관한 지론은 아직도 동일하고,
이번에는 다인원 참여 게임프로젝트의 아트디렉션을 맡아 시각적인 세계관 차별화를 실행하는 입장에서의 이야길 덧붙여보자.
이미 언급하였다시피, 세계관 차별에 있어 가장 큰 실수는 뭐니해도 공간과 시간을 한데 묶어서 사용해버리는 것이라 했는데.
예를들자면 중세라 했을때 무조건 중세유럽이 되어버린다거나, 미래라 하면 미래우주가 되어버리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이 문제는,
특히 게임처럼 다 인원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더욱 일어나기 쉬울뿐더러 보완하기도 힘든 문제일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1.
포인트는 바로 '기준' 이다. 예를들어, '중세 판타지' 라는 컨셉을 정해놓고 시각적 요소-디자인을 만들어나간다 손 쳐보자.
사실, 중세 판타지라는 기준은 물론 가장 범용적이고 또 만들어내기 쉬운 만큼 이 차별화 관점에서는 가장 애매한 컨셉이다.
중세 판타지라는 컨셉을 통해서 나온 게임들중에 세계관이, 그래서 그 세계관으로부터 만들어진 비주얼아트가 딱히 차별화된게 있던가?
없다. 왜 없을까 되물어보자. 왜냐하면, 디렉터 스스로가, 동료들이, '중세 판타지에 이런것이 어울린다' 납득할수 있는 부품만 넣을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만들어낼수 있는 중세 판타지란, 기사가 갑옷을 입고 칼과 방패를 들고 고블린과 오크를 때려잡는 그 이상이 될수가 절대로 없다.
설령 엄청난 차별화를 위하여- 예를들자면 거대한 로보트를 만들어 넣고 싶다 한들. '중세니까 불가능하다' 는 결론만이 되돌아 올 뿐이다.
물론, '일관성' 을 중시하는 쪽에서의 일반적인 방법론으로써 보자면 '미리 정한 컨셉에 맞게만 만들어낸다' 로써 당연히 옮은 이야기인데,
여기에 '차별화' 라는 소스를 살짝 얹으면 문제가 달라진다. 애초에 '중세 판타지' 라는 자체부터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기준'이라는 이야기다.

2.
생각해보자. 중세 판타지인데 왜 꼭 유럽이어야만 할까? 아니 애초에 판타지인데 로보트가 왜 나오면 안되는 걸까?
이런 컨셉이 특히 다인원 프로젝트에서 애매하게 될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나아가 결국 모든것이 이도저도 아닌 똑같은 비주얼로 나오는 이유는.
'중세 판타지에로의 어울림' 이라는, 디렉터를 포함하여 모든 동료들이 가진 각기 다를수밖에 없는 생각의 교차점을 공통기준화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똑같이, 미래라고 하면 왜 꼭 건담이 날아다니는 우주가 무대가 되어야 할까. 단적으로 말해 이것이야말로 차별화의 가장 큰 저해요소인 '고정관념' 이다.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새로운 '그림' 을 만들어낼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다인원 프로젝트에서 이런 '애매한 그림' 이 나오기 쉬운것은 그래서이다.
특정한 세계관에 대하여, 디렉터를 포함한 모든 개발자와 모든 소비자가 생각하는, 공통의 기준에 어긋나지 않게 맞추는 것은 물론 매우 합당할수 있지만,
그러나, 이런 공통의 기준이란 결국 절대로 하나가 될수 없는 애매한 기준일 뿐이고, 그래서 안전하기 위해서는 실로 한정적인 부품만을 사용할수밖에 없기에,
고정관념은, 특히 다 인원의 공통 고정관념은, 상상력이 뛰어난 1인이 생각할수 있는 양보다 실로 그 허용폭이 좁아터질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뛰어난 상상력이라고 칭송받는 소설이나 만화 등의 문화작품은 대부분의 경우 순수히 한두사람의 힘으로만 만들어진것이란 사실을 상기해보자)

3.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애매한 기준점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보편적 상상' 이란 이미 승패가 정해진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리니지 스타일. 그 다음의 양식 에서 주장한 바이지만, 대기업 엔씨소프트의 게임이 일관적으로 가지는 시각적 컨셉인 '보편적인 상상' 이란,
결국 말도안되게 높은 자본력과 인력 동원을 통하여 '순전히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최고의 자리를 점하기 위한', 소위 '제왕전략'이라는 것이고,
뒤집어 말해, 보편적인 상상을 통해 '중세 판타지' 같이 흔한 시각적 컨셉을 통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기업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간단한 이치다. 똑같은 상품이 있고 가격 또한 똑같다면 소비자는 당연히 더 높은 품질의 물건을 고른다. 모두가 똑같이 중세 판타지를 만든다면-
물론 당연히, 더 좋은 인력을 더 많은 시간으로 굴려서 더 좋은 퀄리티의 중세 판타지를 만들어낸, 가장 많은 돈을 가진 개발사가 승리할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의 성패는 오히려 그 '재미' 쪽이 중요한것이 사실이지만, 이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시각화된 세계관' 쪽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음을 염두해달라)
마찬가지로, 주장했듯이 이런 시각적인 차별화에 대해 이를테면 '특별한 개성을 가진 아티스트를 통해 스타일을 차별화하는' 전략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는데.
까놓고 말해, 아무리 오크를 스타일리쉬하게 그려봤자 오크는 오크일수밖에 없기에라도, 이것은 일본식의 소규모 매니아 장사에나 어울리는 전략일 뿐이다.

4.
세계관은 단순히 '틀' 일 뿐이고, 그 틀 속의 내용으로써의 어떤 부품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특히 그 스케일이 한없이 커진 현재의 게임에는,
그 틀 속에 담긴 부품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소비자를(새로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끌어들여서 수익을 낼수 있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됨이 명확하다.
특정 아티스트의 매니아에게는 확실하게 팔리지만 필연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1인 스타일 전략' 은 그래서 대규모 문화사업에 적합하지 않고,
그렇다고 더 많은 사람을 목적하여 가장 보편적인 상상을 통해서 시각적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자본력으로 결정되는 싸움일 뿐이기에,
소자본 소규모의 제작사가, 대규모의 소비자를 상대하는 대규모의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시각적 세계관의 차별화가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저질 퀄리티로 만들어진 아이온, 저질 퀄리티로 만들어진 WOW를 상상할수 있을까? 돈이 없으면 경쟁이 안된다. 그럴바엔 다른걸 만드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세계관을 차별화함에 있어, 설령 그것이 흔해빠진 중세 판타지라고 해도. 그 속의 내용이 색다르다면 이는 충분히 차별화인데.
이때 결국 부딛치게 되는 것은 바로 디렉터 자신과 모든 동료와 그리고 모든 소비자들의 '고정관념' 이자 그 고정관념으로 이루어진 좁아터진 '허용기준'이다.
허용기준을 올바르게 충족시키면서도 차별화를 시도할수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것이야말로 세계관에 대한 공간,시간, 패러다임의 분리와 명확화다.

5.
자. 우리는 지금부터 중세 판타지를 만들기로 했다. 자 그럼 중세 판타지에는 어떤것이 어울릴까?-단정하건데 이런 질문은 잘못되었다.
세계관은 먼저 공간적 세계관과 시간적 세계관으로 분리되어야 하며, 나아가 이 세계를 유지하는 패러다임으로써 또 다시 분리되어야 한다.
중세판타지란게 꼭 15세기의 유럽을 베이스로 삼아 세계관을 만들고 또 그에 따라서 완전히 통일된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까?
시간적 시계관을 18세기까지 끌어와 확장시킴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한 GE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예를들어 분위기는 유지한 26세기라면,
또는 중세가 아닌 한국의 고구려 시대라면, 또는 페르시아 지방 일대를 무대로 한다면, 또는 그리스와 로마를 소재로 한다면, 또는 신화를 소재로 한다면-
상상해낼수만 있다면 충분히 차별화시킬수 있다. 만들어내는 이가 고정관념을 벗어날수 있다면, 나아가 이를 명확한 '기준' 으로써 만들어낼수만 있다면.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포인트는 '기준' 이다. 다인원이 참여하여 문화상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기준이 불명확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바로,
예를들자면 '중세판타지' 같이, 정말 한없이 막연하게 그지없는 그저 '분위기' 만을 정해놓고 출발하여 애매한 공통의 허용기준에 맞추어 나가기 때문인데,
그래서 차별화를 위해서는 결국 애초에 모두가 가진 그 '기준' 자체를, 명확하게, 명시적으로, 차별화 된 쪽으로 새로히 준비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6.
예를 들어, 중세 유럽으로부터 시작해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 문화가 전파되는 시점으로부터 현실과는 다른 패러렐 월드로 분리하고,
서양과 동양의 서로 다른 문화가 섞이고 난 뒤 200년이 흐르고 그동안 발전하여 동서양을 구분할수 없을 정도로 문화가 혼재한 세계를 상상해보자.
단순히 전사라고 해도, 이를테면 상투를 틀고 수염을 기른 남자가 플레이트메일을 입고, 정의 대신 무사도를 입에 달고 있는 전사가 될수 있을 것이며,
단순히 오크라고 해도, 이를테면 문명사회와 떨어져 따로 발전하다 독자적인 문화로써의 고대의 토테미즘을 간직한 이 종족이 될수도 있을 것 아닌가.
(혹시 행여나 그런건 쓸데없는 꼴라주일 뿐이지 게임프로젝트로 만들어내는것은 불가능하다 말하는 게임아티스트가 있을까 싶어 첨언하자면,
단적으로 일본의 만화들만을 놓고 봐도, 이정도까지의 차별화도 없는 문화상품은 한국의 판타지게임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위는 단순히 '중세풍' 이라는 시각적 분위기와 공간만 유지한 채, 시간적인 세계관과 패러다임 자체를 뒤바꾸어 설득력을 부가해본 일례인데.
이를 프로젝트의 다 인원이 전부 고정관념을 벗어나 납득할수 있기 위해서는 디렉터 한명의 머리속을 떠나 명시화 시켜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고,
이에 필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할법한 참고자료- 즉 사진집과 역사책을 대치할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새 기준' 을 준비하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세계관, 차별화된 세계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프리프로덕션에 그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단순히 게임으로써의 기능구현-이를테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어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서만의 프리프로덕션이 아닌,
예를들자면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이, '컨텐츠' 로써 접근하여 그 컨텐츠를 기획 및 설계하는 의미로써의 프리프로덕션 말이다.
그러나 설령 아무리 대자본 대규모라고 해도 프리프로덕션을 딱히 중요치 않게 취급하는 한국의 문화작품 제작 환경이라거나,
또 나아가 컨텐츠 자체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중요도를 낮게 보는 한국의 게임개발 마인드가 맞물려 실질적으론 불가능할 경우가 많고,
결국 일인 디렉터 중심의 제작 체제를 통하는 방법이 한국 환경에서는 불가피하다 생각된다. 물론 상당한 역기능은 감수할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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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EGOIST | 2009/03/03 22:47 | LAB | 트랙백 | 덧글(1)
Commented by 김윤정 at 2009/03/04 01:37
정말 동감가는 글입니다. 늘 차별화된 디자인 디렉팅을 해보고자 해도 능력부족으로 타협해 버리거나, 이질감이 넘치는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방법은 보다 완벽한 프리프로덕션이지만, 프로젝트가 오픈된 다음 빠르게 변화하는 프로젝트 방향까지 전부 예상하는건 무리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노력하고 있지만 말이죠. (그래도 하고 있다는 의의는 가지고 있긴합니다만 .. 아직 퀄리티가 너무 낮아서 T_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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