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려면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냥 그림이 아니라 '돈되는 그림' 이다.
몇달전, 외주계약갱신을 위해서 들린 회사에서, 내 미래를 걱정해주는 높으신 분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남들은 그래. 이십대부터 회사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월급을 쪼개 모아서, 모으고 또 모아서 굴리고 투자하고 불려서. 그렇게 나중에 전세집 얻고 할부로 차사고 그렇게 사는거 아니냐 하겠다만. 적어도 그런 평범한 회사원 생활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그래. 월급쟁이는 그렇게 살수밖에 없겠죠. 라고 대답을 해놓고도. 막상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월급쟁이랑 비교해 다를게 뭔가 싶더라.
돈되는 그림을 계속 꾸준히. 그리고 더 많이 그려라.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라. 환경이 나에게 권장하는 작품활동의 방향이었다. 그러나 나는 만족하지 못할것 같았다. 그래서 돈 벌어서 뭐 어쩔건가. 결국 그래봐야 월급쟁이의 삶과 다를바 없다. 그렇게 모아서. 모으고 또 모아서 굴리고 투자하고 불려서 전세집 얻고 할부로 차사는 인생이다. 그런 인생이 나쁘지는 않다. 대다수 평범한 이들이 가지는 정상적인 행복이 아닌가. 깎아내리진 않아야 하겠지만. 내가 쫒을 목적지는 아닌것 같았다.
먹고살려면 돈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먹고사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가 말하건데. 정말 좋아하는 일을 목숨걸고 하지 않는 이상에야 최고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이야길 하겠고 나도 동의한다만. 회사일을 그냥 회사의 일로만. 야근수당이 나오지 않는 이상에야 굳이 야근을 할 필요가 없는듯이, 목숨은 커녕 건성으로 일하는 많은 이들처럼.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서의 결과가 그래서 별로 최고는 아니라 한들, 혹자가 불만을 가진다 한들 그래서 뭐 어쩔건가 이거다. 먹고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일에다가 목숨을 굳이 내걸 필요도 없고, 그래서 최고의 결과를 내어봐야 먹고사는게 좀 더 나아질 뿐일거 아닌가.
당장 팔아먹어서 돈을 받을수 있는 그런 그림에 나는 도통 만족할수가 없었다. 결국 자기만족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돈이 안되는 그림. 그 기준을 수익성으로 놓는다면 내가 지금 그리는,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닌 그림들은 그저 취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엄연히 말하자면. '취미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정도가 맞겠다. 물질적인 패러다임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취미'에 불과한 일에 목숨을 걸수 있다. 미래를 걸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에 지금의 내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가장 단순히 말하자면. 먹고살기 위해서만이 아닌 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신적인 사치든 욕망의 충족이든, 어쨌거나 자기만족일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오늘도, 먹고살기 위해서 돈되는 그림을 또 그린다. 먹고살기 위한 그림은 먹고살기 위한 그림으로써 족할 뿐이다 생각하며 그린다. 이런 안일한 정신상태로 건성으로 그린 그림이야 그래서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먹고살기엔 충분하다. 먹고살수만 있다면야 뭘 못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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