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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EGOIST : GyuHo.Lee'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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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라사와 나오키를 싫어했던 이유는 이렇게 요약된다. 'TV드라마에나 어울릴법한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기 때문'.
맞다. 나는 한국의 드라마를 지독히 싫어한다. 뭐니해도 그 작위적인 시츄에이션과 거짓으로 점철된 감동을 너무나 싫어라 한다.
현실을 가장하고 있지만 전혀 하나도 현실적이지 않는 판타지. 웃기게도 그런게 또 너무나 인기가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싫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도 마찬가지였다. 단적으로 말해, 질보다 시청율을 더욱 우선시할수밖에 없는 TV드라마에서나 쓰일법한,
순수한 재미나 감동보다는, 독자를 집중시키고 계속 보게 만들기 위한 여러가지 극적 장치들에 더 집중하는 그런 구조란 너무 천박하다 생각했다.
물론. 적어도 오전에 방영되는 불륜 드라마보다야,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더 감동적이고 더욱 재미있는, 가치있는 컨텐츠라는 사실엔 동의하지만,
그러나. 블록버스터는 블록버스터고 드라마는 드라마만의 각기 다른 가치를 가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시야좁은 바보들의,
마치 블록버스터를 가볍게 인수분해할만한 파괴력을 지닌 작품으로 신격화하는 행태 때문에라도 나는 색안경을 도저히 벗을수 없었다.

우라사와 나오키만의 만화 스타일이라고 하자. 생각해보면 이런 스타일을 잘 써먹는 만화가가 잘 없다. 왜일까?
굳이 끄집어내자면 순정만화쪽일테지만. 그것도 한두번이지. 계속 시도해서 아예 자신의 스타일로 정립해낸 이는 우라사와 나오키 유일인듯.
어쨌거나 난 이런 우라사와 나오키만의 스타일이 너무나 싫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천박한 사도의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작품을 전부 재미있게 봤다. 정말로. 언제부터인가 기분나빠지기 시작했었다.
마스터키튼까지는 이렇지 않았던것 같다. 딱 소소한 위기와 소소한 갈등에 소소한 감동.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해피와 야와라부터였던것 같다. 지속적으로 갈등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해나가는 구조의 해피와 야와라는 그야말로 한국형 TV드라마와 흡사했다.
그리고 몬스터. 나는 몬스터의 이야기가 정말 불쾌했다. 우라사와 나오키만의 독특한, 'TV드라마 스타일' 의 완성이자 절정이었다.
매회 이어지는 작위적인 시츄에이션과, 그리고 반드시 튀어나오는 거짓말같은 감동의 결말. 거짓말도 이정도면 정말 예술급일거다.
더욱이나 불쾌했던것은, 그렇게 기분나빠하면서도 나는 몬스터를 결국 마지막권까지 다 사보고야 말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부모님도 재미있게 보셨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후 20세기 소년이 나왔다.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있던 나는 20세기 소년에 들어서는 아예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아주 어린시절 친구들이 모여서 세계가 멸망하는 계획을 쓴다. 그들이 어른이 된후, '친구' 라는 정체불명의 인간이 그 계획을 실제로 실행시킨다-
여기까진 좋다. '친구' 는 분명 어린시절 친구들중 한명일 것이다라는 전제로, 이야기는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그래. 여기까진 봐줄수 있다.
야. 근데말야 씨바. 이런 구조도 한두번이지. 어떻게 매번을 그렇게 계속-알고보니 어느 누구도 아니더라. 한명이 더 있었다-로 대체 몇권을 우려먹는거냐.
그래. 처음 한두권을 매우 흥미롭게 봤다. 그러나 몇권을 넘어가선 나는 급기야 책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씨바 그래서 친구가 대체 누구란 거냐!
맞다. 순수한 재미나 감동보다는, 독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만을 우선하는 그런 전형적인, 우라사와 나오키만의 만화 스타일.
말하자면 '친구' 의 정체를 계속 궁금해하게 만들면서도 끝까지 밝히지 않는 그런 이야기 구조에 나는 화를 내고 더이상 책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 '20세기 소년' 이 영화화되고 한국에서도 개봉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리뷰를 몇개 훓어보니 결국 만화책을 그대로 영상화한것에 다름아니라 하여 별로 관심은 없었긴 한데.
오히려 원작이 이미 오래전 완결되었다는 사실을 덕분에 알게 되어, 그래서 전권을 다시 구해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게 얼마전 일이다.

오. 이럴수가. 이상하게도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아니. 재밌잖아. 도저히 손을 놓을수가 없어...
집중을 유도하는 장치 덕택에 불쾌의 색안경이 너무 강하게 씌워져, 컨텐츠로써의 가치까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 또한.
그렇다. 내가 20세기 소년에 불쾌감을 느꼈던것은 분명히 그것이 '연재되고 있는 도중' 이었기 때문이라 뒤늦게 깨달았다.

이것은 이전 언급한 헬싱과는 정 반대의 결과일것이다.
한회, 한권씩 나오는 것을 보면서 충분히 재미를 느꼈지만, 전권을 모아놓고 보니 완전 바보같은 헬싱에 비해.
20세기 소년은. 한권씩 나오는 것을 보면서 비록 테러의 충동을 느꼈다 한들 전권을 모아놓고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여전히, TV드라마스럽게 다소 작위적인 시츄에이션과 억지스런 감동을 이끌어내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조 자체는 변함없지만.
20세기 소년에서만큼은, 이상하게도 그 모든것이 정말 실제로 있을법한 일들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느껴진다.
전체로 보자면 결국. 화를 낸게 미안해질정도로 '친구가 누구였느냐' 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부터가 진짜였다.

몬스터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한다면. 20세기 소년에서 그 스타일은 숙성된다. 그는 이제 거장으로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테고,
TV드라마 스타일? 몬스터까지는 그랬다고 치자. 20세기 소년은 TV드라마를 뛰어넘는다. 그야말로 '우라사와 나오키만의 만화' 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것이다.


덧붙임:
1.
20세기 소년이 그의 다른작품에 비해서 더욱 큰 설득력을 얻을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 세계가 '가공'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국의 드라마가 저질인 이유는 거짓판타지를 현실로 가장하고 있기 때문인데, 애초 그 세계가 현실이 아님을 인정한다면 결국 그럴듯해 보이지 않을까.
현재에서 미래로, 현실에서 가공으로 변해간 이 장르는 미스테리라기보다는 'SF'에 더 가까운듯한 느낌이 있다. 미국에서 드라마화된다면 볼만할지도.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라사와 나오키가 20세기 소년 이후의 작품을 SF 장르의 '플루토' 로 선택한 점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현실에 있을법한 가공의 이야기' 보다, '가공세계에 있을법한 현실적인 이야기' 가 그에게 더욱 어울림을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2.
그러나. 그 틀이 여전히 'TV드라마' 같은 작법에 묶여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동일하다. 20세기소년에서의 예를 들어보자면.
전세계급의 재앙이 닥쳐도 결국 보여지는 것은 주인공 주위의 몇명의 상황에 그치고 마는 일본특유의 축소지향적 작법이라거나.
그래서라도 확실히, '영화화' 에 어울릴법한, 완전히 그대로를 영화화할만한 작품은 아니라는 여러 영화 리뷰어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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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EGOIST | 2008/09/24 16:35 | Review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sillygoat at 2008/09/26 13:58
명쾌합니다요.
Commented by gskwldsm at 2008/10/08 22:46
20세기소년
아저그거요^^예고편봐서조금아는데
아마두가츠마타?그것도아니면후쿠베두명중에한명이아닐까싶네요전가츠마타
그사람이친구도모다찌인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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