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어느새 익숙해져버린것일수도 있겠다만. 이직후 이제 석달째인가 넉달째인가에 들어선 이 시점에서 겨우 난 이 회사와 조직의 장점을 하나둘씩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그 중에 하나인, 야근으로 대표되는 연장업무에 관한 이야기.
이 회사의 이 팀은 정말로. 되도록 야근을 하지 말자라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의 팀원들이 조금이라도 야근을 할라 치면 빨리 집에 가라면서 갈궈버리는 그런게 있고.
야근이 왜 안좋은 것일까? 한때, 아침 10시에 출근 저녁 6시 퇴근후 4시간 자고, 다시 저녁 10시 출근 아침6시 퇴근해서 4시간 자고 아침 10시 출근- 이라는, 잠을 네시간씩 두번을 나누어 8시간을 자면서도 나머지를 전부 투자해 업무시간이 하루 16시간을 돌파하던 사람으로써 말하자면. 그렇게 일만을 주구장창 하는 것은 단기적인 성과에는 도움이 될런지도 모르겠다만 장기적으로 봤을때는 분명히 손해라고 단언할수 있다.
사람이 쓸수 있는 에너지는 평생의 총량이 사람마다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리프레시 없이 일을 계속 주구장창 할 경우에는, 내일 써야 할 에너지도, 일주일뒤 써야 할 에너지도, 전부 끌어와서 바로 지금의 오늘에 투자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인 것이기에.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보면 에너지를 다 써버려 장기간을 쉬어야 하는, 그래서 인생이 멈추는 텅 빈 껍데기만 남을 뿐인 것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왜 야근을 해선 안되나-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자. 오늘 야근을 하면 내일 일을 하지 못하고, 내일 밤샘을 하면 일주일뒤 일을 하지 못한다. 라고. 사람이 하루에 쓸수 있는 에너지 이상을 써 버리는 것은 미래의 자신에게 빛을 지는, 그것도 지독한 사채를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야근을, 아무리 내가, 우리 모두가 하지 말자고 단언하고 행동에 옮긴다 한들, 조직과 회사의 인프라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야근금지는 그저 한때의 반짝 유행에 지나지 않는 현상이 되어버린다.
자신이 할수 있는것 이상을, 나아가 두세사람 몫을 해 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후임들을 가끔 보고. 나는 그들에게 언제나 이런 말을 한다.
"개인의 시간까지 투자해서 회사 일에 매진하고, 그래서 결국 두세사람의 몫을 한꺼번에 해 내는 것은 물론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조직이 그런 당신에 익숙해져버리면, 언제나 일을 맡길때 당신의 능력을 오버해서 맡기는걸 당연하게 여기게 될 것이고, 나아가, 당신 혼자 있어도 두세사람이 커버 되기에, 당신의 일을 덜어줄 다른 사람을 새로 뽑는, 돈이 들어가는 일에 인색하게 될 것이다"
야근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모두가 잘 알고, 조직의 헤드가 나서서 강조한다. 나아가 해선 안된다 못박고, 모두가 퇴근시간에 같이 퇴근하며, 그것을 조직의 헤드가 나서서 종용한다- 이런 시츄에이션은 뻥안까고 수백번을 겪었다. 그리고 그 수백번이 전부,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유야무야되는 현상을 경험했다.
왜? 아무리 그래 봤자, 기본적으로 지금의 인력으로 하기 힘든 양의 일을 사람들에게 맡기고, 나아가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을 뽑는다' 라는 것에 인색해서는 결국에는 모든 이들이 미래에 빛을 내는 연장업무를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는 모든 관리자- 즉 조직의 헤드와 그 헤드에 그 1차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원래는 10명이 두배의 일을 해 내고 있었고 또 프로젝트에서 두배가 필요하기에 20명분의 일을 짜는 관리자. 20명분의 일을 해 내기 위해서 20명을 뽑기보다는 10명의 에너지를 두배로 늘려서 처리하는 효율을 노리는 관리자. 나아가 그 조직이 해 낼수 있는 일의 스케일에는 사람의 숫자는 크게 관계없다고 생각해버리는 관리자. 우리는 이런 관리자의 이그러진 모습을 잘 안다. 당장 앞에서는 연장업무를 하지 말라 강조하면서도 뒤로는 연장업무를 강요하는 꼴이다.
사실, 이것은 관리자의 모럴적인 문제하고는 크게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관리자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니즈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장업무를 결국 강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도, 프로젝트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사람들을 이끌고 어떤 일을 목표로 리드하는 것만이 관리자의 일이 아니라, 지금 있는 사람들에 맞추어 어떤 일의 목표를 유동적으로 재설정하는 것 또한 관리자의 일이자 역량이라고 단언한다.
데리고 있는 숫자만큼, 나아가 그 모든 이들을 데리고 해 내는 일의 양과 대단성에 따라 관리자의 역량을 가르는 경우가 많기에, 더욱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는-좋게 말해 진취적인-관리자는 언제나 지금 할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의 목표를 설정하는 버릇을 가진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설정된 목표를 지금 데리고 있는 사람에 맞추어 재설정할수 있는지라고 물어보자. 만일 재설정이 불가능하다, 나아가 재설정할수 있는 권한이 없다- 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바로 역량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된다.
관리자의 진짜 역량이란, 해내는 일의 업스케일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운스케일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다운스케일링을 할수 있는가. 다운스케일링을 할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불가능하다면 이 사람은 그 높이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위치나 역량의 문제를 제하면 이 문제는 결국엔 관리자의 사람에 대한 평가와 투자-돈 뿐만이 아닌 시간과 능력적인 모든 것-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사람에 대한 평가와 투자에 인색해서야, 기다리는 결말은 사람으로부터의 외면일 뿐이다. 아무리 작은 조직의 관리자라고 해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쓰러져간 수많은 관리자들을 이미 경험했다.
'지금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지금 할수 있는 일만을 한다'. 개개인, 나아가 그 개개인이 모인 조직, 그 조직을 통솔하는 관리자 모두에 통용되는 이야기다.
이곳에서 내가 찾은 장점은, 단순히 모든 이들이 일찍 퇴근한다는 분위기. 그 이상의 것이다. 사람이 필요할땐 당연하게 뽑을수 있는, 병신같은 새끼는 당장 빨리 잘라버릴수 있는, 나아가 지금 낼수 있는 능력에 맞추어 목표를 재설정할수 있는, 모든 관리자의 위치에 맞는 역할과 책임과 권한을 당연하게 보장하는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이미 갖추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별달리 다를것 없는, 더없이 구태의연한 시대착오적 제도이지만, 적어도 수평을 가장한 왕권조직보단 낫다. 그게 장점이다.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나는 나의 조직과 나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더욱 후한, 더욱 올바른 평가와 투자를 한다. 단순히 야근을 하지 않는다라는 가시적 장점을 넘어서서, 지금도 나아가 미래에도 이것은 분명히 좋은 결과를 낼수 있을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언젠가 오래전, 관리자로써의 길을 걷기로 결정되었을때, 상급 관리자는 나에게 앞으로는 출퇴근시간을 잘 지켜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런 종용과 다짐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언제나 연장업무를 해야 하고, 그래서 다음날은 늦게 출근하는 악순환이 언제나 반복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은 언제나 많았고, 저 투자로 높은 수익이란 고 효율을 노리는 분위기 덕택에 합당한 대우로써 능력이 좋은 사람을 데려올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단순히 감성적인 문제가 아닌, 조직과 시스템의 사람을 다루고 평가하며 투자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즈음의 나는 차가운 새벽공기를 맞으며 출근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왜. 언제나 재충전되어 넘쳐나는 에너지에 일을 하고싶은 욕구가 샘솟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단순히 나 개인의 감성적인 컨디션 문제가 아닌, 보장된 조직의 시스템 덕택이라 이렇게 단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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